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 시시콜콜

대한민국은 쏠림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대학생들을 보면 완벽히 획일적이다. 스펙 관리를 위해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한다. 학점 관리, 토익점수, 인턴활동, 봉사활동, 그리고 해외연수까지. 수십만 대학생들의 포트포리오가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학은 그 다음 단계의 시험을 준비하는 훈련소로 전락하고 만다. 대학생들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학원과 집을 오가는 ‘수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 가능한 빠르게 걸음마를 떼서, 네 살에 영어유치원을 가야 한다. 여덟에 반장이 되고, 열다섯에 원어민영어발음을 습득해야 한다. 스물여섯에 대기업에 들어가, 서른넷에 외제차를 끌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패자’라고 규정지었다. 하지만, 진짜 패자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탈락하여, 체제가 주입한 회로에 맞추어 움직이는 자동인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쏠림은 공포감 때문에 발생한다. 공포감이라는 건 사람을 획일적으로 만든다. 길을 가는 데 가장 안전한 것은, 사람들이 뛰는 방향으로 같이 뛰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어느 곳인지 모르면서 그저 따라만 가고 있다. 영화 <아일랜드>에서의 복제인간은, 스폰서(인간)에게 장기와 신체부위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상품이다. 현실의 우리들도, 기업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자발적으로 복제인간이 되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욕망이 진정한 자기 욕망인지 생각해보자.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고 해서 공부를 잘했을 뿐이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라고 해서 좋은 회사 들어갔을 뿐이다. 라캉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남의 욕망을 욕망했다.  

영화 <트루먼 쇼>의 짐캐리는 30년 동안 인조인간과 다름없는 삶을 산다. 그저 쇼의 PD가 조정하는 그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언제나 틀에 박힌 생활을 하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제품 광고를 위해 존재한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그의 탄생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시청했다. 그것을 주인공 스스로만 몰랐다. 하지만 인간은 틀에 가둬놓고 길들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주인공은 가식적인 삶을 떠나, 진정한 자기 스스로의 삶으로 들어선다.  

모두가 Yes만을 외치는 시대, 남들이 하지 않더라도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때는,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김중혁, 디스트릭트 용산 SCRAP

어제 한겨레 칼럼.
서울가는 버스 안에서 읽다가, 오우 디스트릭트9 봐야겠다 했다.
오우 깜짝이야, 강의에서 선생님이 똑같이 말했다.
다운받아논거 있는데 극장가서 봐야겠다.ㅋㅋ
그런데 누구랑 봐야하나, 과외도 짤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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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의 인생 시시콜콜

 1960년 가을,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집안 어른들은 장남이 태어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창규’라는 이름을 지어두었던 참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한 채 세상에 나왔다. 그 후로 그녀의 부모는 기대를 저버린 두 딸을 더 낳았고, 잘못을 만회하려는 듯 아들 넷을 차례로 순산했다. 열여섯의 그녀는 부모 대신 여섯 동생들을 제 손으로 돌봐야 했다. 엄마 역할을 해야 했던 소녀에게 사춘기 타령은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집안 탓에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다. 대신 도시에 있는 온천에서 일을 하게 됐다. 변변치 못한 위생시설 탓에 그녀는 그곳에서 B형 간염 보균자를 얻었다. 동생들 학비를 버느라 오랫동안 공장에 취직하기도 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다 중매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작은 키 때문에 남자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으나, 그의 성실함을 보고 결혼을 결정했다. 결혼 1년 후, 남편 집안의 기대대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기쁨의 눈물은 오래가지 않아 슬픔의 눈물이 되어 버렸다. 연이어 가진 두 아이를 비참하게 유산했다.

  아이를 낳고도 맞벌이를 하기로 했다. 남편의 많지 않은 월급 때문이기도 했지만, 습관처럼 일을 하게했던 마음 속 책임감으로 인해 편히 쉴 수가 없었다. 한 남편의 아내이자 한 아들의 어머니로 가정을 지켰고, 다섯 군데의 일자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새 학기, 아들이 반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뒤돌아 걱정해야 했다. 그렇게 20년이 넘도록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고, 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그녀는 5년 전부터 음성 꽃동네에서 지체장애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갱년기를 맞은 그녀는, 삶의 많은 부분을 종교에 의지하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접신을 경험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상한 소리를 계속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기를 반복했다. 빙의 현상이 일주일 간 지속되었다. 사실 그 때, 그녀의 어머니는 말기 암으로, 할아버지는 폐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 어떤 모진 고통도 견딜 것 같았던 그녀도 그 시절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두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로 종교에 더욱 의지하게 됐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는데, 하루에 묵주기도 50단을 해야 한다고 결심한지 오래다. 소원은 A4 용지 한쪽을 가득 채웠는데, 모두 가족의 안녕을 바라고 있다. 스스로를 위한 구절은 찾을 수 없다. 최근 그녀의 가장 큰 소원은 아들의 임용고시 합격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굳게 믿은 채, 오늘도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간절히 소원을 빌며 하루를 시작한다.

  다가오는 금요일은 그녀의 50번째 생일이다. 생일 축하드려요, 엄마. 그리고, 사랑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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