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3/13 15:24

프로스트vs닉슨 보고듣고



부끄러운 얘기지만, 고등학교 때 정치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과였기 때문에 힘들지 않을까라는 고민도 했는데, 약사 출신에 국회의원을 보고 아, 나도 가능하겠구나 했다. 지금 생각하면 미쳤지 싶다. 정치인들의 털어서 수북히 쌓이는 먼지를 생각해보면 그렇고, 그걸 감추고 억지 웃음을 지어 이미지를 내세워야 하는 불편함을 떠올리면 또 그렇고, 이제는 내겐 아예 그럴만한 능력이 없음을 깨닫는다. 항상 욕하는 대상을 한 때는 동경했었다는 사실이 부끄러울 뿐이다. 어제 영화를 보면서 그래서 부끄러웠다.

근데 나를 향한 그 부끄러움이 다른 한 사람을 위한 연민으로 바뀌었다. 다른 한 사람은 뭐 그 분..
영화가 닉슨을 너무하리만치 객관적으로 보여주어서 그랬는지, 사실 그 분을 떠올렸을 때 너무 불쌍했다. 특히나 닉슨의 마지막 표정이 비칠 때. 그러면 안되는데, 그 분의 못생긴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그 얼굴에 담긴 그 분의 인생에 연민을 느꼈다.

닉슨이 재기를 노리면서 치밀하게 준비했던 자신만의 논리를 보면서, 기억도 못 할거면서 술마시고 전화한 얘기를 보면서, 모두가 저마다의 생각에 정당하다고 믿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다는 것을 생각했다. 만약 그 의지가 나와는 다른 의견이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 분도 분명히 그 나름의 합리가 있을 것이다. 그런 생각도 분명히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 텐데 그것이 너무 어렵다. 닉슨이 자신의 치부를 덮고자 공적을 둘러댈 때, 그 공적만은 인정을 해줘야 하는 건지 사실 헷갈린다. 

어쨌든 영화는 무척 재밌었다. 본격적인 토론이 시작하기 전엔 하품도 가끔 나왔지만, 후반부가 충분히 메워주었다.  
닉슨은 재임 기간 2년만에 스스로 사임했는데, 그 분도 올해가 2년 째 아닌가.. 기대가 된다.
닉슨을 연기한 프랭크 란젤라의 연기는 꽤 일품이었다.
아, 신참vs능구렁이의 대결이라는 의미에서 어퓨굿맨과 비슷한데, 난 더 괜찮았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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