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8 20:35

이여영, 프로야구는 화려하지만 프로 선수는 초라하다 SCRAP



프로야구 선수라면 높은 연봉과 인지도부터 떠오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몇몇 스타 선수에나 해당되는 얘기다. 8개 구단 소속 선수 470여명 대부분의 상황은 훨씬 더 열악하다. 절반이 연봉 3천만 원이 채 안 된다. 최저 연봉은 2천만 원. 그것도 시즌이 끝난 12월과 1월, 두 달은 무급 상태가 된다. 4대 보험도, 퇴직금도 없다. 이들의 평균 정년은 5년밖에 안 된다. 무엇보다도 9년 간은 자신을 선택한 구단을 제 발로 벗어날 수 없다. 어느 모로 보더라도 노동자의 지위를 갖고 있지만, 법적으로는 개인 사업자다.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몇몇 선수들이 10년 전 이맘때쯤 당시 여당이던 새천년민주당의 관광체육분과 전문위원을 만났다. 각 구단의 맹렬한 반대를 무릅쓰고 한국프로야구선수협의회(현재 명칭은 선수협회)가 결성된 것은 그 이듬해인 2000년 1월의 일이었다. 선수협회(회장 손민한)는 이제 한국야구위원회(KBO)와 각 구단이 인정하는 실체가 됐다. 하지만 여전히 그들로부터 협상의 파트너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 선수들을 대신해 소송을 제기한다. 지금도 선수협회는 군 보류 수당(선수가 군 입대 시 구단이 지불하는 전년 연봉의 25%)을 두고 KBO와 구단을 상대로 다투고 있다. 2007년 KBO가 일방적으로 없애버린 수당을 공정거래위원회에 담합 혐의로 제소해 되살려 냈다. 동시에 6억 원에 이르는 지난해 미지불금을 되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이 움직임의 중심에 서 있는 이가 바로 선수협회 권시형(45) 사무총장이다. 선수협의회 결성 당시 여당의 전문위원으로, KBO와 각 구단으로부터 ‘선수협의회의 배후 세력’으로 지목됐던 인물이다. 선수협의회 초기 자문위원으로 활동했던 그는 지난해 4월 사무총장직을 맡아 다시 선수협회로 복귀했다. 그는 서울대 체육교육학과와 대학원을 거쳐 뉴멕시코주립대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전문위원 이후에는 서울대 스포츠과학연구소의 책임연구원으로 지내왔다.

지난 27일 탄천 건너 잠실야구장이 훤히 보이는 서울 삼성동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마침 이날은 노동조합발족추진위원회의 공개 출범 하루 전이었다. “프로야구 5백만 관중 시대를 열었지만, 선수들 상황은 미국과 일본에 비하면 열악하기 그지없습니다. 지금은 선수들이 소송을 통해서만 권익을 주장할 수 있는 상황이죠. 노조가 돼야 단체 협상권을 갖고 선수들이 스스로 보호할 수 있습니다.” 그가 밝히는 선수협회의 노조 발족 추진 이유다. 간혹 미국 프로야구 선수들의 파업 소식을 전해 듣는 야구팬들이라면, 혹시 이 일이 한참 불붙기 시작한 야구 열기에 찬물을 끼얹지 않을까 걱정할 수도 있겠다.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준우승으로 야구의 인기가 한창 높아졌지만, 야구의 저변을 더 넓히기 위해서도 프로야구 산업의 주역인 선수들의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있어요. 선수협회만 하더라도 지난해 불합리한 관행을 고쳐달라는 11가지 주문을 했지만, KBO는 아직까지 묵묵부답입니다. KBO는 철저하게 구단 중심으로 운영되는 곳입니다. 선수들의 의견이 끼어 들 여지가 없습니다. 노조가 막강한 미국은 물론이고, 25년 전 노조가 설립된 일본과도 딴판이죠.”

이쯤에서 프로야구 산업의 구조 개편에 대한 얘기가 나올 때마다, 각 구단이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방어 논리를 꺼내들 때가 됐다. “각 구단이 적자를 보는 상황에서 선수들 권익만 생각할 수는 없지 않을까요?” 이른바 구단의 적자 논리다. 예상했던 대로 권 사무총장은 우리 프로야구의 태생적 한계를 지적한다. “1982
  
  
 
년 프로야구가 출범할 당시 일본 모델을 따른 후, 각 구단은 재벌에 종속된 상태입니다. 각 구단 입장에서 스폰서십이나 중계권을 통해 수입을 얻고 손익을 따지는 게 아닙니다. 그저 재벌이 마케팅비로 지원금을 제공하고, 구단은 손실을 기록하는 거죠. 재벌 총수나 구단주의 기분에 따라 지원 금액이 결정되고, 그에 따라 손실 규모가 결정되는데요. 이건 진짜 적자는 아닙니다.”

권 사무총장은 초등학생 시절의 대부분을 동대문 야구장 관중석에서 살다시피 했다. 고등학교와 실업 야구를 보는 것이 취미 생활의 전부였던 열혈 야구팬이었다. 한때 정의감으로 간여했던 선수협회 일은 지금 본업이 됐다. 이제는 선수 협회를 노조로 한 단계 격상시키는 힘든 일을 자청했다. 그의 결의는 확고하다. 각국 프로야구선수 노조 출범 역사를 상기시키며, “미국과 일본이 각각 100년, 50년 걸려 한 일을 한국은 10년 만에 이루도록 하겠다”고 벼른다. 비로소 그는 자신이 오래 앉아 있던 관중석에서 피말리는 승부가 불가피한 운동장으로 내려섰다. 이 승부는 관중석의 야구팬들이 어느 쪽을 응원하는가에 달려 있다.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79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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