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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이 쏜 폭탄 때문에 팔레스타인 어린이들이 죽으면 그게 남의 땅에서 일어난 단순한 불상사가 아니고, 내 생명에 막대한 손상을 입는 것이라고 느끼는 것이 생태적인 감수성이죠. ... 그런데 저것 때문에 내 마음이 못 견디게 아프고, 분노하고, 눈물이 나는, 이런 감수성은 환경적 감수성이 아니라 생태적 감수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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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잔본, 인간관계라고 하는 인생살이의 가장 근본적인 토대가 망가졌다는 거예요. 수십 년 동안의 고도경제성장 논리가 이걸 망가뜨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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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게 기본적으로 이야기거든요. 우리를 진짜 행복하게 하는 건 돈이 아니에요. 좋은 인생을 사느냐 못 사느냐는 내가 얼마나 흥미로운 얘깃거리를 만들거나 기억하느냐에 달렸어요. 문학적인 감수성이란 것도 그렇게 해서 함양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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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의 얘기를 빌려서 제가 하고 싶은 얘기를 요약해보자면, "바보야, 문제는 경제 회복이 아니라 자아 회복이야" 뭐 그런 얘기가 돌 수 있겠네요. 경제회복만 되면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게 아니고, 자기 존재가 회복이 되고 그걸 느껴야만 이 불안에서, 우리가 자유로워지고 편안해질 수 있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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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는 그대로 불안을 직면해보자, 정말 뭐가 불안한지 들여다보는 과정 없이는 본질에 다가갈 수 없다. 두려움에 직면하지 않으려고 세상의 변화에 발 빠르게 대처하면서 늘 본질을 피해왔기 때문에 사실은 우리가 불안한 거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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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여기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해요. 그러니까 욕구 충족이 안 된 상태를 지속하지 말라는 것이죠. 내 욕구를 금방금방 알아차리는 것,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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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지 말고 그 순간순간 행복을 느끼면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 임상 경험상 아무리 예측 불가능하고 상황이 불안정해도 자기 존재로 대면하는 사람, 그런 것들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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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정신과 의사로서 분명히 말할 수 있는, 모든 사람은 죽는다는 명제 말고 완벽하게 모든 사람한테 예외 없이 적용되는 명제가 있어요.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완벽하게 불완전하다는 거예요. 예외는 만나본 적 없어요. 심리적인 여러 가지 균형이론을 적용해보면 완벽한 인간이란 존재할 수 없어요. 자기를 돌아본다면서 자기가 부족한 점을 열심히 찾아내 얼른 고쳐서 더 성장하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의외로 우리 사회에 많다는 걸 느껴요. 기본적으로 그런 사람들이 자기애를 갖기가 무척 어렵고, 자기애가 없으면 한 사람으로서의 근본적인 기반이 상당히 취약할 수밖에 없죠. 그래서 남들이 보기에는 기능상으로 여러 방면으로 발전을 하는 것 같지만, 기반이 흔들리면서 비싼 대가를 치르는 사람들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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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예컨대 이윤을 늘리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도입해 생산량을 늘리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노동자들에게 임금을 적게 주면서 문제가 생깁니다. 사회 전체의 구매력 자체가 줄어드는 결과가 생깁니다. 한쪽으로는 생산을 증가시켰는데 다른 쪽에서는 구매력을 약화시키면서 생산물이 팔리지 않는 그런 지점에 도달하게 됩니다. 물건이 안 팔리면 어떻게 됩니까? 물건이 안 팔리면 돈을 회수하지 못하고, 돈을 회수하지 못하면 은행에서 대출받은 돈을 갚지 못하고 도산하게 됩니다. 공황의 시작입니다. 지본주의가 발달해가는 과정 그 자체에 이 같은 모순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본주의 체제에서는 공황을 없앨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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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펙이 석유 가격을 4배나 올릴 수 있었던 것도 전 세계적으로 원자재나 곡물에 대한 투기가 있었기 때문에 자기들도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원자재 투기가 일어나고, 1973년 10월 석유 가격이 폭등하니까, 각국 정부가 물가를 잡기 위해 1974년 초부터 긴축정책에 들어갑니다. 대출을 안 해주고, 금리를 올리고. 그렇게 하니까 이전에 투기를 했던 사람들, 원자재, 곡물, 석유에 투기했던 사람들이 은행에 빚을 갚아야 하는데 투기물이 파리지 않는 거예요. 그래서 그 투기꾼들부터 망하기 시작합니다. 1974년부터 시작된 세계적 규모의 공황은 이와 같이 시작했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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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대기업들이 보니까 한국 경제가 샌드위치 신세였던 것입니다. 노동집약적 산업은 중국이나 동남아에 뒤지고, 부가가치가 높은 기술집약적인 산업은 일본, 독일, 미국에 밀리는 거죠. 샌드위치가 되어서는 성장을 못 하겠다 싶어 반도체, 전자산업, 자동차, 조선 산업, 석유화학 산업에 엄청나게 투자를 합니다. 특히 외국자본을 많이 차입해 투자를 했습니다. 1993년 말에 외국으로부터 빌려온 도이 439억 달러인데, 1997년 말에는 1,635억 달러로 증가합니다. 엄청나게 외자를 많이 도입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규모 투자를 하고 수출을 하려고 하니까 세계시장이 좁아져 있더라 이 말입니다. 상품가격도 재대로 못 받고, 판매량도 떨어지고. 투자를 많이 한 대기업들이 거의 도산 상태에 빠지게 된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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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기에 이명박 정부는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과 모든 국민이 잘사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잘 몰라요.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주머니를 터는 거예요. 모든 국민이 서로서로 남의 주머니를 털면 남는 게 뭐가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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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금융기관을 개인에게 맡기지 않는 체제가 지금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합니다. 또 중요한 산업은 국민 모두의 소유로 해서 계획 경제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지금 기업들이 무정부적으로 무질서하게 경쟁을 하다가 망하고 있습니다. 그다음 저소득층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죠. 국민소득이 2만 달러면 애 둘을 키우는 부부는 1년에 소득이 8천만 원 이상이 되어야 하잖아요. 제가 서울대에서 정년퇴임할 즈음에 보니까 7천만 원 정도 됩니다. 이 말은 한국의 소득 불균형이 매우 심각하다는 거예요. 국민에게 기본 소득을 보장해주자, 이런 아이디어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연기금을 활용할 수 있겠죠. 연기금은 국민 모두의 돈이잖아요. 연기금으로 중요한 기업 주식을 사서 모든 국민이 큰 기업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고방식이 필요합니다. 모든 개인이 각개 격파식으로 나 혼자만 잘살려고 하니까 문제가 자꾸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절대 해결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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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개인을 만드는 것일 뿐 인간이 본래 이기적이라고 할 수는 없어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전제는 주류경제학이 만들어 낸 것입니다. 주류경제학에서 늘 얘기할 때 사람은 경제인이다 이랬다고요. 인간은 자기의 이익만을 추구한다는 것이죠. 자본주의 사회를 보니까 자본가도 이기적이고, 노동자들도 이기적이다, 라고 하면서 그것을 역사 전체에 확산시킨 것이라고 봅니다. 예전에 원시공산사회가 있었다고 한다면, 거기에는 이기심이 작동할 수 있는 근거가 별로 없었겠죠. 함께 협동하고 나누고 사는 방식이 기본이거든요.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달라진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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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고 이타적이기도 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한국의 교육 제도에서는 현실상 이기적이게 됩니다. 사교육을 안 할 수 없잖아요. 남들이 다 하니까. 그러니까 죽자 사자 경쟁하죠. 예를 들어 핀란드는 세금으로 완전히 무상교육을 하고 완벽한 평준화 교육을 합니다.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 잘하는 학생, 못하는 학생, 장애인, 비장애인 가릴 것 없이 다 섞어서 학급을 구성하고 개인 평가를 하지 않습니다. 12녀 동안 네댓 명을 구성해 소그룹 평가를 합니다. 그룹 평가를 하게 되면 자기 혼자 잘해봐야 아무 소용없잖아요. 옆의 친구하고 다 같이 알아야 하잖아요. 그러니까 핀란드의 12년 교육 목표가 협동하기예요. 우리처럼 12년 동안 사교육을 해서 키워진 사람하고, 협동하기를 교육목표로 12년 동안 키워진 사람하고는 완전히 다를 거예요. 제도 속에서 사람이 형성되는 것이지, 원래 인간이 이기적인 것은 아닐 겁니다. 그래서 협동하며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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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는 부동산 파이냉싱 문제가 있습니다. 주상복합건물을 지으면서 용산 같은 곳 14군데를 동시 발주하잖아요. 미분양이 속출하는 데도 더 많이 짓는 것입니다. 건설 경기를 위해서인데, 이게 정말 안 팔리면 대폭락이 되는 것입니다. 대폭락이 안 되게 하려고 투기 수요를 일으키기 위해서 재건축 규제를 완화하고 중산층의 돈을 어떻게든 끌어내 투기 열풍을 일으키겠다는 것이 이명박 정부의 유일한 정책인 것이죠. 또 실물 위기인데요, 한국은 수출 의존도가 높습니다. 미국, 유럽, 일본 등 세계 경제가 동시에 0퍼센트 성장 혹은 마이너스 성장입니다. 한국의 수출 의존도가 50퍼센트가 넘었는데, 그 수출 가운데 40퍼센트가 줄어버리면 방법이 없죠. 경기 침체를 조금이라도 투기 붐으로 지연시키려는 것인데, 차라리 이런 경우는 성공 못 하는 게 낫습니다. 만일 이게 성공하면 제 생각으로는 내후년에는 마이너스 5퍼센트에서 마이너스 10퍼센트까지 갈 수 있습니다. 정말로 나라를 들어먹는 일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이 바뀌겠죠.
193P
상상력은 타인이나 사물 혹은 자연의 눈을 빌려 생각해보는 것
194P
한국은 소녀가 13세 때 커피 중독에 걸리는 나라입니다. 13세 소녀가 밤 10시에 과외를 하거나 학원에 갑니다. 학교에는 커피 자판기가 없는데, 학원에는 커피 자판기가 있잖아요. 밤에 커피를 마시면서 어우 피곤해, 나는 이거 없으면 못 살아 라고 합니다. 또 첫 번째 기초화장을 13세부터 시작합니다. 색조 화장은 16세부터 하도록 되어 있어요. 화장품 회사에서 이렇게 표준화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겁에 질리게 됩니다. 그래서 요즘은 어떻게 하면 그 겁을 떨치게 할 수 있을까, 그런 질문을 던집니다.
195P
겁이 없으면 판을 읽을 수 있습니다. 겁에 질려 있건 자기가 꼭 이루고 싶은 욕망, 한 같은 집착이 있으면, 그것만 보게 되지 전체 판을 못 보거든요. 도롱뇽의 입장이 되어본다는 것도 관찰을 해야 하는 것이죠. 어릴 때부터 자기로부터 이탈해서 자기를 바라볼 수 있는 것은 여유에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정말 겁에 질려 잇는 사람은 절대 그렇게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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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어둠속의 희망>과 비슷하게 느낄 거예요. 이명박 대통령은 남은 임기 다 채울 것 같고, 그 다음에는 박근혜 대통령이 될 것 같고 또 박근혜 끝나고 나면 이재오 전 의원이 자기도 해야겠다고 할 것 같고, 제가 지금 마흔 한 살인데, 그렇게 10년만 보내도 쉰이예요. 제가 요즘 이십대에게 하는 말이 있어요. 너 이렇게 있다가 이명박 5년, 박근혜 5년 하면 서른 살이야. 너의 청춘은 없어.
236P
아까 성희롱 얘기를 했는데, 자기를 승화시키는 방법을 모르니까 그런 일들이 벌어진다고 봐요. 다른 방법을 모르니까. 다른 길이 없나 생각해보는 시간을 전혀 주지 않고, 입시 구조가 아이들을 몰고 가고 있으니까 한국의 미래는 절망적일 수밖에 없죠. 이런 아이들은 단기적으로는 신자유주의적 체제에 잘 적응하겠지만 결국은 자기 불안을 못 이길 겁니다. 신자유주의를 살아낼 여유와 감성을 길러줘야죠.
267P
그러면 30년 후 한국에 지금 잘 나가는 이 종목들이 계속 남아 있겠느냐. 유니레버 사장은 비관적으로 봅니다. 그 산업이 브라질이나 인도, 중국으로 갈 거란 이야기입니다. 조선 산업이 일본을 뿌리치고 한국에 왔죠. 그럼 30년 후에 그 조선이 중국으로 떠나지 않겠느냐는 겁니다. 그러면 지금 한국에 있는 산업이 다 빠져나가고 나서 한국이 어떻게 되겠는가. 비관적이라는 겁니다. 왜냐, 한국은 교육이 너무 획일적이라는 거예요. 결국은 창조성, 창의성이 이 모든 것을 끌고 가는 힘이데, 우리는 너무 똑같잖아요.
274P
저는 우리가 보다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제는 경제 자체로만 수직상승할 수 없습니다. 사회적 평등이라든지 사회복지라든지 생태적 환경이라든지, 우리 국민들의 수준, 인식수준과 비례하는 것입니다. 옛날처럼 후진국에서 고속으로 성장하자, 이렇게 해서 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가 보다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국민이 돼야 경제도 함께 성장한다고 봅니다. 그래서 사회복지, 평등, 생태와 같은 가치가 높아져야 경제가 성장합니다.
285P
저는 지금 홍대 앞에 있는 젊은이들의 다양한 아이디어들이 어느 좋은 지자체장과 만나면 이게 또 문화의 거리가 싹틀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2004년 7월 베를린을 돌고 있을 때, 뉴스위크에 위대한 10대 국가 중 독일이 선정됐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독일이 선정된 이유가 옛날 동베를린의 한 거리에 있는 건물들을 아주 싸게 예술가들에게 임대해준 것 때문이에요. 예술가들이 모이면 뭐하죠? 밥 먹고 나면 뭐합니까? 예술작품 만들죠. 온갖 창의적인 상품들이 만들어진 거예요. 그게 관광지가 되어버린 거예요. 시가, 지자체가 홍대 앞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싸게 장소를 빌려주겠다고 하면 저는 이 도시가 금방 변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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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문제는 기능의 문제라기보다는 꿈의 문제입니다. 말하자면 어떤 삶에 있어서 중심을 잡고, 뭔가 도전할 수 있고, 또 뭔가 꿈을 꿀 수 있는, 그런 힘조차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주지 않는 그런 교육, 그런 사회가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제가 만날 인용하는 게, 경남 거창고등학교 가면, 강당 저 뒤편에 직업선택 10계명이라는 게 걸려 있어요. 첫째, 아무도 가지 않는 곳을 가라. 둘째, 월급이 낮은 곳으로 가라. 셋째, 승진의 가능성이 아예 없는 곳으로 가라. 그리고 쭉 가다가, 아홉 번째 가요, 부모 형제 배우자가 말리는 곳이면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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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가보면 아이들을 현장에서 많이 만나게 되요. 지하철에서, 박물관에서도 만납니다. 교육이라는 게 삶을 가르치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아이들을 교실에다 잡아놓고 이론으로만 가르치잖아요. 시장바닥과 법정과 경찰서와 길거리 이 모든 게 교육의 장인데 말이죠. 저는 우리가 아이들을 너무 현실과 유리된 공간 속에서 가르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합니다. 미국에는 아이들을 위한 캠프가 엄청나게 많아요. 그리고 캠프에 못 가는 아이들을 위한 기금, 재단도 있어요. 일본에서 농촌 생활을 1주일 동안 무조건 경험하게 하는 것도 얼마나 훌륭한 결단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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