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 가을, 어느 시골 마을에서 한 여자 아이가 태어났다. 불행하게도, 집안 어른들은 장남이 태어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미 오래 전에 ‘창규’라는 이름을 지어두었던 참이었다. 그녀는 그렇게 기대에 부응하지 못 한 채 세상에 나왔다. 그 후로 그녀의 부모는 기대를 저버린 두 딸을 더 낳았고, 잘못을 만회하려는 듯 아들 넷을 차례로 순산했다. 열여섯의 그녀는 부모 대신 여섯 동생들을 제 손으로 돌봐야 했다. 엄마 역할을 해야 했던 소녀에게 사춘기 타령은 사치일 수밖에 없었다.
가난한 집안 탓에 고등학교를 가지 못했다. 대신 도시에 있는 온천에서 일을 하게 됐다. 변변치 못한 위생시설 탓에 그녀는 그곳에서 B형 간염 보균자를 얻었다. 동생들 학비를 버느라 오랫동안 공장에 취직하기도 했다. 그렇게 젊은 시절을 보내다 중매를 통해 한 남자를 만나게 되었다. 작은 키 때문에 남자에 대한 첫인상은 좋지 않았으나, 그의 성실함을 보고 결혼을 결정했다. 결혼 1년 후, 남편 집안의 기대대로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기쁨의 눈물은 오래가지 않아 슬픔의 눈물이 되어 버렸다. 연이어 가진 두 아이를 비참하게 유산했다.
아이를 낳고도 맞벌이를 하기로 했다. 남편의 많지 않은 월급 때문이기도 했지만, 습관처럼 일을 하게했던 마음 속 책임감으로 인해 편히 쉴 수가 없었다. 한 남편의 아내이자 한 아들의 어머니로 가정을 지켰고, 다섯 군데의 일자리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했다. 새 학기, 아들이 반장이 되었다는 소식에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뒤돌아 걱정해야 했다. 그렇게 20년이 넘도록 남편의 뒷바라지를 했고, 아들을 대학까지 졸업시켰다.
그녀는 5년 전부터 음성 꽃동네에서 지체장애자들을 돌보는 일을 하고 있다. 그곳에서 천주교 세례를 받았다. 갱년기를 맞은 그녀는, 삶의 많은 부분을 종교에 의지하게 되었다. 세례를 받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접신을 경험했다. 정신 나간 사람처럼 이상한 소리를 계속했고,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기를 반복했다. 빙의 현상이 일주일 간 지속되었다. 사실 그 때, 그녀의 어머니는 말기 암으로, 할아버지는 폐에 문제가 있어 병원에 입원해 있었다. 그 어떤 모진 고통도 견딜 것 같았던 그녀도 그 시절을 이겨내지 못했다. 결국 두 사람은 두 달 간격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 후로 종교에 더욱 의지하게 됐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기도를 하는데, 하루에 묵주기도 50단을 해야 한다고 결심한지 오래다. 소원은 A4 용지 한쪽을 가득 채웠는데, 모두 가족의 안녕을 바라고 있다. 스스로를 위한 구절은 찾을 수 없다. 최근 그녀의 가장 큰 소원은 아들의 임용고시 합격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고 굳게 믿은 채, 오늘도 여전히, 새벽에 일어나 간절히 소원을 빌며 하루를 시작한다.
다가오는 금요일은 그녀의 50번째 생일이다. 생일 축하드려요, 엄마. 그리고, 사랑해요.
덧. 세례명은 그녀의 미소와 아주 꼭 닮은 엘리자벳이다.

덧글
그리고 멋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