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10/29 01:53

No를 외칠 수 있는 용기 시시콜콜



대한민국은 쏠림현상이 너무 심각하다. 대학생들을 보면 완벽히 획일적이다. 스펙 관리를 위해 모두가 같은 행동을 한다. 학점 관리, 토익점수, 인턴활동, 봉사활동, 그리고 해외연수까지. 수십만 대학생들의 포트포리오가 일치하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대학은 그 다음 단계의 시험을 준비하는 훈련소로 전락하고 만다. 대학생들은 어른이 되지 못한 채, 학원과 집을 오가는 ‘수험생’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어른들은 어린 학생들에게, 엘리트 코스를 밟아야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가르쳐왔다. 가능한 빠르게 걸음마를 떼서, 네 살에 영어유치원을 가야 한다. 여덟에 반장이 되고, 열다섯에 원어민영어발음을 습득해야 한다. 스물여섯에 대기업에 들어가, 서른넷에 외제차를 끌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패자’라고 규정지었다. 하지만, 진짜 패자는 자신의 삶으로부터 탈락하여, 체제가 주입한 회로에 맞추어 움직이는 자동인형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쏠림은 공포감 때문에 발생한다. 공포감이라는 건 사람을 획일적으로 만든다. 길을 가는 데 가장 안전한 것은, 사람들이 뛰는 방향으로 같이 뛰는 것이다. 그런데, 그 길이 어느 곳인지 모르면서 그저 따라만 가고 있다. 영화 <아일랜드>에서의 복제인간은, 스폰서(인간)에게 장기와 신체부위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상품이다. 현실의 우리들도, 기업에게 자신의 노동력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상품이 되어가고 있다. 자발적으로 복제인간이 되려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욕망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욕망이 진정한 자기 욕망인지 생각해보자. 어렸을 때부터 공부 잘해야 한다고 해서 공부를 잘했을 뿐이다. 좋은 회사에 들어가라고 해서 좋은 회사 들어갔을 뿐이다. 라캉이 말한 것처럼 우리는 남의 욕망을 욕망했다.  

영화 <트루먼 쇼>의 짐캐리는 30년 동안 인조인간과 다름없는 삶을 산다. 그저 쇼의 PD가 조정하는 그대로 살아왔던 것이다. 언제나 틀에 박힌 생활을 하고, 그가 만나는 사람들은 제품 광고를 위해 존재한다. 전 세계 시청자들이 그의 탄생부터 일거수일투족을 시청했다. 그것을 주인공 스스로만 몰랐다. 하지만 인간은 틀에 가둬놓고 길들일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영화는 보여준다. 주인공은 가식적인 삶을 떠나, 진정한 자기 스스로의 삶으로 들어선다.  

모두가 Yes만을 외치는 시대, 남들이 하지 않더라도 진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려는 용기가 필요하다. 사람이 나이 들어 가장 허망해질 때는, 하나도 이룬 게 없을 때가 아니라 이룬다고 이룬 것들이 자신이 원했던 게 아니란 걸, 깨달았을 때다.


덧글

  • 소쿠리 2009/10/31 15:56 # 답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공감이 가는 글이군요... 우리 나라는 이러이러한 시기에는 이것을 해야해 라는 관념을 갖고, 사람들의 가치관이나 행동을 획일적으로 통제하려는 경향이 있는 듯 합니다. 매스컴과 광고에서도 그것을 은근히 부추기구요...
    하이데거가 말하는 '그들(혹은 세상사람들 das Man)' 혹은 마르쿠제의 일차원적 인간들이 한국 사회에 넘쳐난다는 것은 큰 문제입니다. 어쩌면 저 조차도 그런 무리들 중의 한 사람일수도...
  • 모모코 2009/11/03 11:19 # 삭제 답글

    굉장히... 좋은 글이네요.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용기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겠어요.
  • Leedo 2009/11/10 15:03 # 답글

    이런 졸문에, 영광스런 덧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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