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한겨레 칼럼. 이제 2009년도 다 지나간다./
마지막 한 장의 달력도 폐지수거함에 들어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우겨우 살아가기에 겨울이라지만 12월은 아무래도 글을 다 쓰거나 그림을 다 그리고 난 뒤에 남은 먹물, 여적(餘滴)만 같다. 한 해의 반절을 붙안고 씨름했던 원고를 탈고해 시원섭섭한 상태에서 하릴없이 술자리를 기웃거리고 다닌다. 이른바 지난해를 성찰하는 송년회라지만 올해는 순화되지 않은 표현을 써서라도 망년회라 불러야 하지 않을까 싶다. 지난 시간을 돌이키노라니 잊고 싶을 만큼 수고롭고 괴로웠던 일들이 되살아나 술잔을 비우는 속도가 빨라진다. 제각각 고단하고 고독했던 사람들의 넋두리와 하소연을 듣노라면 현진건의 소설 한 구절이 입안에서 알알하게 맴돈다.
“그 몹쓸 사회가, 왜 술을 권하는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잃은 한 해였다. 개인적으로 몇몇 친구를 어이없는 사고로 떠나보냈고, 사회적으로도 빛나던 사람들을 맥없이 놓쳤다. 슬픔보다는 황당함이, 분노보다는 냉소가 흘러나오는 일이 허다했다. 한 번도 뉴스라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볼 수 없었고, 권력이라는 것이 벌이는 역겨운 촌극에 질려 유머감각 유지를 위해 챙겨보던 코미디 프로마저 볼 필요가 없어졌다. 그런데도 유행가 가사처럼 내가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기신기신 밥벌이를 하여 꾸역꾸역 먹고살지만 그조차 더럽고 치사해 자주자주 부끄러워진다.
그럼에도 세상일이 대개 그렇듯 모든 것이 완전히 나쁘지는 않다. 잃고 나서야 비로소 가졌을 때 몰랐던 소중함을 알고 감사하게 되었다. 사람은 잃었지만 사랑을 얻었고, 혼탁한 시류 속에 무엇이 옥이고 무엇이 돌인지를 가려보게 되었다. 수준 이상을 성취했다고 자만했던 상식과 이성이 얼마나 허망하게 무너지는지, 피의 대가로 얻은 민주주의가 무자비한 탐욕 앞에 얼마나 볼썽사납게 능멸당하는지도 보았다. 이렇게 따지고 보니 수경스님이 왜 그를 ‘역행 대보살’이라 부르셨는지를 알겠다. 역사의 신은 어리석은 인간을 위해 때때로 선지자 대신 반면교사를 보내주신다.
졸지에 깨달음을 얻게 된 건 고마운 일이지만, 다만 걱정이 되는 것은 ‘한다면(안 한다고 하고) 하는’ 미친 불도저의 시대에 그 빈약한 삶터조차 지켜내기 쉽지 않은 이웃들이다. 언젠가 이야기할 생각에 모아두었던 장애인단체 소식지의 마지막 헤드라인은 ‘장애인연금, 10명 중 2명도 못 받는다’였다. 일본인 유가족들 앞에는 난딱 무릎부터 꿇어 바치면서도 용산참사 유가족들 앞에서는 구렁이 똬리 틀듯 가부좌하고 앉은 지 오래니, 무슨 사업인지 삽질인지를 한다며 한겨울 강추위에 철거를 강행하는 건 별일도 아니다. 언제부터인가 지원금이 끊겨 운영이 중단된 지역아동센터와, 대형마트가 들어와 문을 닫은 구멍가게의 빈터를 보노라면 참으로 막막한 기분이 든다. 어쩌겠는가? 바닥까지 몰겠다면 바닥까지 몰리는 수밖에.
하지만 유구한 역사의 가르침에 의하면 바닥이라는 곳이 끝은 아니다. 헛된 기대와 섣부른 낙관은 할 수 없을지라도 역사는 언제고 바닥에서 다시 시작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절망 속에서 한 줄기 희망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는 동안, 일상에 단단히 뿌리내린 채 견디고 버티는 사이, 사문이 사바대중을 깨우치기 위해 치는 목탁처럼 삶의 육탁(肉鐸)은 펄떡거리며 되살아날 테니. 싱싱하고 비린 시 한 구절로 송년 인사를 대신한다.
새벽 어판장 어선에서 막 쏟아낸 고기들이 파닥파닥 바닥을 치고 있다/ 육탁肉鐸 같다/ 더 이상 칠 것 없어도 결코 치고 싶지 않은 생의 바닥/ 생애에서 제일 센 힘은 바닥을 칠 때 나온다(배한봉의 시 육탁肉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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