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03/17 23:26

finching, 어려운 영어, 더 어려운 영어 교육 배움과 가르침



단국대 영어영문학과 교수님의 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학민국 사회가 경쟁과 승자독식 사회라는 점에 대공감. 이런 패러다임이 존재하는 한, 영어문제를 포함해서 교육에 관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근데 협동과 개성과 존중, 공동체 정신이 훨씬 중요하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어떻게 가르치고 사람들에게 어떤 식으로 알릴 것인지, 더 나아가 현재 한국사회의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요것이 막연하기만 하다. 88만원세대를 다 읽으면 해답이 보일까../

토요일에 영미문학 연구회에서 학술대회가 있었다. 4명의 발표자와 토론자, 그리고 청중들의 활발한 토론이 오후 내내 이어졌지만, 정작 이야기는 그다지 가닥이 잘 잡히지 않았다. 마지막 파트의 사회자였던 내가 이야기를 잘 수습하지 못한 탓도 있긴 하지만, 워낙 대한민국의 영어 교육이라는 문제가 한군데만 톡 건드려도 줄줄이 모든 문제가 다 고구마 줄기처럼 엮여져 나오는지라, 이야기를 '정리'하기가 썩 쉽지는 않다. 구체적인 얘기도, 큰 얘기도 충분히 다 하지는 못했지만, 학회를 끝내고 나오면서 이런 생각들을 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대한민국 사회가 극단적인 경쟁과 승자독식의 사회라는 점이다. 한국사회에는 우리 다음 세대에게 경쟁 대신 협동을, 서열 대신 개성을, 평가 대신 존중을 가르쳐야 한다는 근본적인 지향점 자체에 대한 합의가 부재한다. 누가 이런 얘기를 꺼내면 대번에 그건 너무 현실을 모르는 얘기며, 지금 상황에서 아무런 소용도 없는 이야기라고 한다. 한마디로 공허한 탁상공론이라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문제는 이런 상황이 해결, 혹은 적어도 완화되지 않으면, 영어 교육 문제, 나아가 전반적인 교육의 문제가 절대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입시의 유형을 바꾼다든가, 공교육에 더 많은 재원을 투자한다든가, 하는 것으로는 절대로 국민들의 사교육 부담이 줄어들거나 기러기 아빠가 퇴출되거나 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이런 교육제도에 성공적으로 적응하면할수록 그 학생들의 머리와 감정은 점점 황폐하게 될 것이고, 지적인 능력은 점점 쇠퇴할 것이다. 자신의 존엄성과 지적인 능력을 손상당하지 않고 싶은 학생은 학교 제도에 저항할 수밖에 없는 시대가 올 것이다.

단적으로 말해서 꼭 '일류'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유명 기업에 들어가지 않아도, 심지어 약간 무능하거나 머리가 나빠도, 인간으로서 존중받고, 적당한 수준의 생활을 누리며 그닥 자존심 상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 생각이 없다면 그 모든 입시 제도와 교육프로그램에 관한 정교하고도 '구체적인' 논의들이야말로 '탁상공론'이 된다. 도대체 뭐가 탁상공론이고 뭐가 구체적인 이야기일까.

두번째 장애물은 한국의 여론을 주도하는 계층 -- 정치인, 학자, 언론인, 고소득층 --의 '매판성'이다. 미국의 제도와 사회는 너무나 바람직한 것으로서 우리가 따라해야 마땅한 것이라고 여기며, 어떻게 해야 그와 비슷해질 수 있을까를 궁리하는 것이 지식인과 정치인의 책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너무 많다. 이런 사람들 앞에서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으로서 사는 것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자칫 매우 촌스럽고 국수주의적인 사람으로 취급받기 십상이다. 한국어 사용자의 수가 세계 10위권임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마음 깊은 곳에는 한국어와 영어 둘 다 잘하면 더 좋지만 굳이 한쪽을 택한다면 한국어를 버리고 영어를 택해도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소위 '사회지도층'에 속한 수많은 아빠들이 처자식을 외국(주로 영어권)에 보낸 이유가 꼭 영어 습득은 아니다. 한국의 경쟁적인 학교 풍토에 염증을 느끼고 좀 더 자유롭고 아이들의 잠재력을 잘 개발할 수 있는 교육 시스템을 찾아갔다는 것이 대부분의 응답일 것이다. 이들이 한국의 교육 체제에 대해 느꼈던 혐오감 자체는 정당한 면이 있다. 그것은 앞서 지적한 지나친 경쟁 풍토와 서열화, 1등만이 존중받는 세상에 대한 염증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으니까 말이다.

문제는 이들이 자녀들의 행복과 잠재력 개발에만 방점을 찍은 나머지, 자녀들이 한국어를 사용하는 한국인으로서 살아가는 데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가령 대다수의 기러기 아빠들은 자녀들이 외국에서의 경험을 살려 한국 사회를 좀 덜 경쟁적인 사회로, 상호존중과 협동의 분위기가 주도하는 사회로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는다. 사실 이들에게는 한국 사회가 어떻게 되건, 한국의 교육이 어떻게 망가지건 큰 상관이 없다.

처자식을 영어권에 보내고 한국과 외국에서 두 집 살림을 운영할 정도의 경제력을 갖춘 사람들이라면 우리 사회에서 상당한 경제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소유한 계층이며, 사회적인 발언권도 많이 소유한 사람들이다. 이들의 마음이 이미 이곳을 떠나 '콩밭'에 가있는데, 나머지 사람들이야 그들을 따라하지 못해서 발을 동동 구르는 것 말고 달리 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그런 상황에서 저소득층에 대한 영어 교육이며 공교육 강화를 논하는 것은 (아주 안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근본적으로 영어 교육 자체를 왜곡할 수밖에 없다.  

이것은 제도의 문제라기보다는 이데올로기 싸움의 영역에 속하는 문제다. 어쩌면 우리 사회는 그러한 '매판성'에 대해서 '우리 것은 좋은 것이여'라고 외치는 해묵은 민족주의 말고는 제대로 대처할 논리를 생성해낼 여유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국수주의의 혐의에서 벗어나면서도 대한민국 지식인과 지배층의 매판성을 비판할 수 있는 담론의 형성이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긴 토론과정에서도 청중 속에서 나왔던 질문, 즉 고도의 전문적 영어 능력을 갖춘 인력은 인구의 2% 정도면 족한 것이 사실이라도 온 국민이 그 2%에 속하겠다는 욕망을 느끼고, 나머지 98%는 낙오자라고 느끼는 게 현실이라면 '온국민이 다 영어에 몰입할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게 공허하지 않느냐는 의문에 대해 우리는 끝내 대답하지 못했다. 그것은 좁은 의미의 '영어 교육'의 테두리에서는 도저히 해결될 수 없는 문제였기 때문이다.

결국 학회를 끝내고 나오면서 나는 "영어 교육의 문제를 영어 교육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암담한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것이 한국의 영어 교육을 소위 '영어교육 전공자'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는 근거가 된다는 생각도 아울러 들었다. 전공자들이나 영어교육 이론을 열심히 공부하는 교사 지망생들에겐 좀 미안한 얘기지만, 영어 교육 이론이란 게 별 것 있는가, 외국어 능력이란 모름지기 노출 시간과 노출 빈도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분량으로 승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보면 영어를 익히는 데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게 있을 수 없다. 가장 좋은 것은 영어권에 가서 '사는' 것이고, 아니면 한국을 영어 공용국으로 만드는 것이다.

문제는 온 국민이 대한민국을 비워두고 영어권 국가에 가서 살다 올 수도 없고, 단일 언어로 소통하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대한민국 사회를 인위적으로 영어 공용국으로 만들 수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까지는 안 되지만 그런 상태에 되도로 가깝게 가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영어교육의 목표라면, 이것은 단순히 영어 교육의 문제가 아니라 매우 중대한 정치적 문화적 사안이 된다. 교육이론이나 교수법이 문제가 아니라, 영어라는 외국어를 익히는 데 개인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집단의 차원에서도 그렇고 인생의 얼만큼을 할애할 것인가, 라는 문제가 된다는 거다.

인생은 유한하고, 하루는 누구에게나 24시간이다. 1시간을 더 공부하려면 잠을 1시간 줄이거나, 다른 일을 1시간 줄여야 한다. 영어를 익히는 데 투여할 시간을 어떻게든 최대로 확보하겠다는 생각에 정작 더 중요한 다른 것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자는 이야기가 그렇게 씨도 안 먹히는 '탁상공론'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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