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 나에 대한 얘기가 아니다.
아직 삶의 무게를 느낀다고 말 할 나이가 나는 아니다.
감히 얘기하기에는 아직 나는 어리다. 아니, 부족하다. 나이가 아니라, 삶에 대한 진정성 말이다.
나이가 마냥 많다고 해서 삶의 무게를, 그 사람의 진중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 대한 진정성과 땀과 눈물이 있다면 삶의 무게는 나이와는 큰 상관이 없을 게다.
이동훈이라는 사람을 만났다. 하동훈이 아니다. 지금 공익 생활을 하는 그 사람과 비교하는 것 자체가 결례다.
서른일곱의 나이, 하지만 40대는 족히 되어 보이는 인상.
눈 전체가 빨갛다. 눈동자에 흰자는 원래 없던 것 처럼. 사진을 잘못 찍었을 때 나타나는 그 눈이었다.
하루종일 건설 공사장에서 용접을 하셨단다. 그래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날 그런 눈을 보이셨다.
사람의 눈은 마음을 보여주는 창이라고 했던가? 그 사람의 눈에서 한을 느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바로 노가다를 하셨단다. 평생을 그렇게.
처음엔 인천으로 가서 어찌하다가 낚시대에 문양을 새기는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그 일을 하다가 30분이 채 안된 채 도망쳐 나왔다고 한다.
신나를 함께 뿌려서 작업을 하는데, 마치 술을 두짝을 마신 것 처럼 어지러웠단다.
이러다 죽을 수 있겠다고 느꼈다고.
죽음을 말하는 말투로는 어색하게 웃음을 띄고 있었지만, 그 빨간 눈에 물기가 고였다.
평생 안해본 일이 없다고 했다.
소주방, 호프집 알바, 전기배선공, 운전기사, 복사집 등등..
전기가 원래 하셨던 일이란다. 외선을 타다가 떨어졌다고.
그래서 앉은 자세가 그렇게 삐딱하다고.
오토바이를 타다가 목이 두번이나 부러졌다고.
그러고보니 얼핏 봐도 건장한 몸에 흉터가 많았다.
그 두꺼운 팔목에 검붉은 멍, 손에 흉터, 얼굴에도.
자신은 얼마 배우지 못해 원래 말끝이 흐리다고 한다.
그래서 상대방을 무시한다는 오해도 많이 받았다고.
그저 낮추기만 했다. 그냥 미안하다고.
먼저 안주를 챙겨주신다.
저녁도 못 드셨다면서. 그 힘든 일을 하루 종일 했음에도.
내일 졸업앨범 사진촬영 때문에 술을 먹지 말자고 다짐을 했음에도,
바로 앞에 술잔을 남길 수가 없었다. 핑계를 댈 수 없었다. 핑곗거리가 아니었다.
너무나 비루했다, 내가.
아직 어머니와 아파트에 살고 있다고 했다.
서른 일곱의 나이에 아직 결혼도 올리지 못했다.
자신은 아파트가 싫다고, 자신의 꿈은 조그만한 땅을 사서 조립식이라도 땅에 붙은 집을 꾸리는 것이란다.
그것이 마지막 꿈이란다, '최후'의.
전화가 왔다. 그가 웃었다. 정말 그의 얼굴에 그런 수줍은 웃음이 어울릴 수도 있구나.
애인이었다. 마석에서 택시를 타고 춘천까지 온다고.
택시회사에 전화를 걸어서 택시비가 얼마나 나오는지 물어본다.
7만원, 거의 그의 하루 일당이다.
그걸 자신이 낼 의향을 보인다.
아, 바닥에서 꽃을 꺼낸다. 이 꽃이 무슨 꽃인지 아냐고 묻는다.
처음 보는 꽃. 서양식 달맞이 꽃이란다.
애인한테 줄려고 샀느냐 묻자,
이걸 어떻게 선물하냐고 정색을 한다.
그러면서 꽃 향기가 강하지도 않고 은은한 것이 방에 두면 그 향이 오래갈 것이라고 한다.
애인이 도착해서 기다리는데도 먼저 일어서지 못한다. 그만 가보라고 해서야 주섬주섬 옷을 챙겼다.
그와 악수를 했다. 내 손보다 두께가 두배는 됐다.
못생기고 손톱에는 검은 때도 보이고 굳은 살도 엄청났다.
그 손에서 그의 인생을 느꼈다. 그 찰나의 감촉으로도 그러기에 충분했다.
그가 가고 아무도 먼저 말을 꺼내지 못했다.
그보다 네살이 많은 선배조차.
그저 빈 술잔에 술을 기울이고,
조용히, 다같이, 술을 비울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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