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전교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말할지는 모르겠지만, 전교조에 대한 나의 생각은 분명 긍정적이다. "아이들을 교육지옥에서 해방시키고, 이 사회를 좀더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자는 노력" 을 한 나의 은사님들이 일단 그 생각에 바탕이 되고 나 또한 그런 일을 할 수 있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서울시 교육감 선거결과를 보니, 기분이 착잡하다. 나는 원래 세상물정에 아둔한 사람이라서, 아무리 잦아들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촛불집회의 여진이 계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왜 선거결과가 이렇게 되었는지 솔직히 이해가 잘 안 된다. 물론 이런 결과를 전혀예상하지 못했다고 하면 거짓말일 것이다. 하지만, 선거일 바로 며칠 전에 “강남지역에 공공임대아파트를 세우면 강남의 교육의 질이떨어질 우려가 있다”는 극히 비교육적인 발언을 실제로 했다는 것이 확인된 후보자가 막중한 교육행정의 지휘자로 뽑힐 수 있으리라고믿기는 사실 어려웠다.
하기는 10%대에 불과한 저조한 투표율을 고려하면, 선거라고도 할 수 없는 기괴한 선거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다수표를획득한 후보자의 당선을 부정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따라서 당분간 우리의 아이들이 더 혹독한 교육지옥에 갇히게 되는 사태를우리는 각오해야 할지 모른다.
벌써 선거결과에 대한 다양한 소감, 진단, 분석이 나오고 있다. 나로서는 경청할 만한 내용들이 많지만, 그 가운데서 제일 마음아픈 게 강남의 학부모들에게는 “공공임대 아파트가 들어서면 강남지역 교육의 질이 떨어질 것”이라는 바로 그 발언이 오히려 그후보자에게 몰표를 던진 주요 동인이 되었을 거라는 분석이다. 만약 이 분석이 옳다면, 그 학부모들은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보다도기왕에 자신들이 누리는 특권적 위상의 유지 내지는 공고화에 더 관심이 많다는 얘기가 된다.
물론 그런 부모들이라고 해서 사람이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근본도리에 대해 전혀 무지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배타적인 경쟁보다는 공생의 논리가 인간적으로 더 바람직한 가치라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그들 자신이나 자식들의 기득권이 행여침해당할 수 있는 사태에 대해서는 극도의 경계심을 갖고 있는지 모른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다른 사람과 어울려지내는 삶의 지혜와 기쁨을 체득하는 것이라는 교육의 대명제에 대해서 원칙적으로는 수긍하되, 자신의 자녀들은 어떻게든 경쟁에서이겨서 출세를 하고 ‘성공’을 해야 한다는 게 오늘날 이 나라 학부모들의 공통한 심정일 것이다.
물론 이러한 부모의 욕망을 비난할 수는 없다. 지금은 전체 노동자의 절반 이상이 이미 비정규직이 되어 있는데도 개선될 기미가별로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더욱이 잘 나가는 정규직 노동자는 850만원의 보너스를 받는 일도 있는데, 비정규직 노동자는 똑같은일을 하면서도 단 한푼도 받지 못하는(경향신문 2008.7.26.<현대중공업 노사/‘그들만의 돈잔치’>) 어이없는현실을 보면서, 어느 부모인들 자식의 ‘경쟁력’을 높이는 데 몸부림을 치지 않겠는가. “세상의 어머니들은 사회가 아무리 부패해있어도 자기 아이들은 거기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을 받기를 원한다”고 일찍이 괴테는 말했지만, 실제로 자기 자식이 풍찬노숙의혁명가가 되기를 바라는 부모는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이른바 신자유주의 시장경제라는 이름 밑에서 사람의 모든 에너지를 오로지 이윤과 권력의 확대를 위해 쏟아 붓도록강요하는 이 미치광이 시스템에 대한 맹목적인 충성의 필연적인 결과가 무엇인지를 우리는 깊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살아남기 위해서 각자가 ‘경쟁력’을 갖추어야 한다고 하지만, 내가 살기 위해서 남을 죽여야 하는 이 야만적인 경쟁체제의 불가피한귀결은 사회적, 생태적 지옥임이 분명하다. 우리가 언제까지 공멸을 향한 이 맹목적인 질주를 계속할 것인가.
유감스럽게도, 이번 교육감 선거에서 수구 언론권력은 전교조를 희생양으로 삼았고, 그 전략이 상당히 먹혀든 것 같다. 물론전교조라고 해서 문제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전교조가 왜 이처럼 욕을 먹어야 하는가. 전교조가 그동안 해온 것이란기본적으로 아이들을 교육지옥에서 해방시키고, 이 사회를 좀더 인간적인 사회로 만들자는 노력이 아니었던가. 하기는 아마 그래서핍박을 받는 것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신학자 도로테 죌레의 말처럼 “해방을 시도했던 사람들에 대한 세상의 답변”은 늘‘십자가’이기가 쉽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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