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안개
시월의 첫날 새벽, 충주의 밤안개는 여전했다. 네 시에 충주의 거리를 걸은 것은 처음인 것 같다. 들이마시는 숨이 찼지만 오히려 그 느낌이 좋았다. 걸으면서 문뜩 세상이 참 허망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게 힘들게 살아온 줄 알았는데 죽음이라는 무게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 무엇이든.
“자신 없냐?”
그 녀석의 이 말에 공부가 아무리 잘 되고 있어도 그 누구든 농구공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불도 없는 학교 운동장, 농구장에서 고3 수험생이 한 시간 가까이 그렇게 슛을 하고 리바운드를 하고 그렇게 땀을 흘렸다.
장례식장
터미널에서 병원으로 곧장 갔다. 큰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초등학교 2학년 이후 처음으로 그 장례식장에 갔으니 14년만이었다. 분향소에 들어가 그 녀석을 보니 힘없이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 일어났다. 절을 하고나서 얼굴을 제대로 보니 울고 있었다. 왜 이렇게 일찍 왔느냐고 묻는 말에 그저 손을 잡고 또 안아주는 것밖에 화답을 하지 못했다.
상주
이십대 초반에 그 녀석은 상주가 됐다. 장례식이 어색한 우리들 앞에서 녀석은 상주 노릇을 했다. 잘은 모르지만, 아주 잘 했다. 때때로 울기도 했지만 우리들 앞으로 와서 그 특유의 농담도 던졌다. 물론 어색하게 웃어주었지만. 집에서는 모른다면서 어른들 앞에서 담배를 참았다. 몰래 화장실과 밖에서 우리들과 피웠을 뿐, 그러고 나서 사탕까지 준비했다.
아버지
녀석의 아버지의 성함도 사실 몰랐다. 영정 사진을 봐도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수능 100일 전 백일주를 학교 체육관에서 먹은 적이 있다. 그 때 아버지들을 모셔서 함께 맥주를 먹었는데 아마 그 때 계셨을 거다. 그 녀석이 맥주를 빠르게 비우고 여러 병을 꺼내와서 아버지께서 당황하셨을 것이다.
친구들
녀석은 행복한 놈이다. 그렇게 많은 친구들이 달려와 주었다. 내가 모르는 사람들도 꽤 되었다. 낼 모레가 시험이라는 의대 다니는 놈, 전역하고 이번 학기에 복학했다는 놈, 대학원 준비하는 놈, 고시 준비하고 있다는 놈, 고시원에서 있다는 놈, 휴학하고 알바하고 있다는 놈, 공익 근무하고 있는 놈, 상근으로 있는 놈. 각양각색의 처지의 친구들이 와서 위로해 주었다.
주인
돌아가신 분을 기리고 가족들을 위로해주는 것도 중요한 일이기는 하지만, 장례식의 주인은 어쩌면 죽은 자가 아니란 생각을 했다. 살아있는 사람이 주인이었다. 평소에 하지 못했던 죽음이라는 화두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이다. 바로 우리들이. 죽음이라는 것 앞에서 우리는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가, 돌이켜보는 것이다. 그리고 한없이 작아지는 거고. 또 한편으로는 힘을 내는 것이고. 그저 그렇게 죽음 앞에서 온전히 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것이다.
위로
손을 잡고 안아주는 것으로 위로를 다했다고, 아니 위로라고 하는 것이 위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다들 그저 함께 밤을 지새우는 것밖에 하지 못했다. 세시 반이 되어서 그 녀석이 찾아왔다. 괜찮으니 그만들 돌아가라고. 낼 수업도 있지 않냐고. 그렇게 일어났다. 되지도 않는 위로의 말을 전하면서. “밥 꼭 잘 챙겨서 먹어라 임마”
태그 : 안녕히계세요
덧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