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10/21 11:35

1박 2일 시시콜콜



 

18일 토요일 사촌누나 결혼식이 수원에 있었다. 추석 때 부터 기다려왔고 수원가기 위해 수원에 사는 동기한테 길을 묻기도 했다. 사실 결혼식은 금방 끝났다. 전 날 먹은 술 때문에 춘천에서 바로 가는 8시 10분 차를 놓쳤고, 만능 통치약 격인 서울로 가서 거기서 다시 수원으로 가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인터넷으로 찾아보니 서울 터미널에서 수원까지 바로 가는 차는 없단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야한단다. 그래서 강변에서 지하철로 강남역까지  간 다음에 거기서 환승해서 수원까지 갔다. 그렇게 힘들게 수원까지 도착해 놓고 결혼식은 20분도 안되어 끝나고 점심도 후딱 먹고 나왔다.

사실, 18일 주요한 일정은 결혼식이 아니었다. 바로 기륭전자 앞 농성장에 가는 것이었는데, 사실 가기로 마음 먹은 것은 이틀밖에 되지 않았다. 결혼식만 보고 바로 돌아오려고 했는데, 15일에 블로그를 돌아다니다가 김현진씨 블로그를 알게 되었고, 또 그래서 함께 맞는 비 카페에 가입을 하게 되었다. 주말에 사람이 필요하다고 했다. 어, 그러고 보니 수원에서 지하철로 30분이면 가는 거리였다. 그럼, 답은 나왔다. 그래서 가게 되었다.

농성장에 도착하니 2시가 조금 넘었다. 2시 집회가 사람이 적어서 늦어졌다는 데 가자마자 집회를 시작했다. 사람이 적어서 약간 놀라기도 햇는데, 집회가 시작하니 사람들이 많이 모였다. 피디수첩을 통해서 봤던 낯익은 분들이 많이 보였다. 힘찬 목소리로 발언하지만 여전히 가느다란 몸인 분회장님이 가장 눈에 띄었다. 잠시후, 권명희 조합원의 가족들이 새 플랑을 가지고 오셨다. 플랑을 펴보이자 순간 울컥. 가족들을 다시 보고 또 울컥.


마지막 상징의식으로 집회를 마쳤는데, 권명희 조합원 남편분께서 망치로 정문을 치는 것이었다. 작은 체구에서 그런 힘이 나올 수 있던 것은 아마도 분노였으리라. 아무도 말리지 못하는 것은 다들 그 한을 감당하기 힘들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때 아무 것도 모르는 염치없는 용역들이 부랴부랴 문을 열었다. 조금 두렵기도 했지만, 하는 짓을 보니 너무 어이가 없었다. 그 동안 회사 안에 마련한 숙소에서 쳐 놀고 있었겠지, 그러다가 허둥지둥 몰려 나왔겠지. 그러곤 그 더러운 인상을 보인 거고. 짐짓 아니 원래 그런 표정으로 우리들을 비웃었겠지. 자신들이 무엇을 위해 그러는 것도 모른채. 어떤 사연이 있더라고 그런 것은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이 그렇게.

7시 저녁 문화제가 있기 전까지 사실 고민이 있었다. 문화제를 끝으로 돌아갈지, 아니면 자고 갈지. 문화제에서 발언할 기회가 생겼다. 처음 보는 얼굴이어서 그렇다는 것이다. 음, 무슨 얘기를 드려야 할까. 이렇게 복장도 이곳과 맞지 않고 처음으로 와서 또 앞으로 또 올지도 모르는데, 과연 내가 어떤 말씀을 드릴 수가 있을까. 그런데 어떻게 또 노래까지 불렀고, 저녁까지 먹었다. 부끄럽고 또 미안했다.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었다. 딸이 학교에서 조퇴해서 병원에 가 있는데 빠질 수 없었다. 그렇게 일한 죄 밖에 없는데 결국 돌아왔던 것은 해고 문자였다. 일방적인 통보. 그래서 투쟁을 시작했던 거고. 그것이 1150일이 넘었다. 그 과정에서 단식으로 90일을 버텼던 눈물겨운 과정도 있었던 것이고. 그 분들은 바로 우리 아버지, 어머니 였다. 또 앞으로 어쩌면 나도 겪을 수 있는 미래의 나의 모습이었다. 그렇게 돈의 가치가 사람의 목숨보다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살고 있었다. 그게 우리 나라 현실이었던 것이다. 참을 수가 없었다. 이런 좆같은 세상에서 숨쉬고 살아간다는 것이.

이를 두고 어떤 이는 이게 힘이 없는 사람들이 보이는 행동이냐며, 회사쪽에서 찍은 영상을 링크해 두었다. 그렇게 세상을 보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누추한 곳까지 알바가 오다니 굉장히 황송합니다요.- 열심히 일하다가 회사에서 해고 문자가 오면, 그저 "암요  회사가 어렵다지요. 그동안 베풀어준 은혜가 있는데 그렇게 하는 것이 맞죠, 맞고요" 그러면서 그냥 나와야 하는 거겠죠. 일본이 독도가 우리땅이라고 주장합니다. 아 암요, 우리가 내어 주어야 하겠지요.

회사 측은 조합원 때문에 일을 못한다고요? 그래서 중국으로 이전 하는 겁니까. 그렇게 몰래, 뭐가 캥겨서, 새벽에 차량을 동원해서 옮긴 겁니까. 아, 조합원들이 요구하는 돈이 3억이나 된다고요. 조합원들이 투쟁한 기간이 얼만지 아십니까. 1150일이 넘었습니다. 횟수로 4년째 입니다. 참 그런데, 용역들에게 하루에 주는 돈이 700만원이라지요? 그 사람들에게 주는 돈은 있으면서 조합원들한테는 못주겠다는 거죠. 그래서 일을 못한다고, 회사가 못 돌아간다고요.


그렇게 1박 2일을 그 곳에서 보내면서, 일주일간 손대지 않았던 담배를 샀다.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약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것 뿐이었다. 옆 사람에게 담배를 권하고 또 불을 붙여주면서  그렇게 얘기를 나누는 것이 전부였다. 아이씨 내가 이래서 담배를 못 끊어, 제길.






덧글

  • 카렌 2008/10/24 22:03 # 답글

    와주셔서 감사해요.. 정작 저는 바보같이 교통사고로 못가고 지금 컨테이너에 앉아서 글을 봤습니다. 감사해요.
  • Leedo 2008/10/25 16:38 #

    더 못 가서 죄송할 따름입니다.. 참, 씨앗 잘 받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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